겨자씨의 믿음2016.07.20 07:21

645. 그런 기독교는 없습니다

[말씀]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 (왕상 3;9)
So give your servant a discerning heart to govern your people and to distinguish between right and wrong ~" (1 king 3:9)

1. 오늘날의 기독교는 그저 어떤 힘 있는 존재의 힘을 빌려 자신의 소원이나 이루고 문제해결이나 하는 무속신앙의 모습과 섞여서 광란의 파티를 벌이고 있습니다. 

어떤 신학자의 말처럼 한국의 기독교는 이제 비빔밥 종교가 되어 버렸습니다.한국의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니라 기복교가 되었다는 웃지 못 할 농담이 정설이 되어버린 듯합니다. 

그처럼 구복(求福)자가 어떤 큰 힘을 가진 존재에게 힘을 빌려 자신의 소원을 이루고, 자신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샤먼이라는 무당을 중재자로 세우고 그를 통해 치성을 드리는 것은 샤머니즘이라 불러야 옳습니다. 

오늘날의 기독교는 목사라는 샤먼을 중재자로 세우고 하나님이라는 그저 힘만 센 비인격적인 어떤 존재를 달래고 닦달해서 복이나 받아내려고 하는 그런 무당종교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아닙니다. 그것은 기독교가 아닙니다. 성경은 그와 정 반대의 이야기를 합니다. 성경은 예수를 믿게 되면 첫 번째로 찾아오는 것이 ‘고난’이라고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오늘날의 수많은 샤먼들은 자신의 세(勢)를 늘리고 과시하기 위해 그 ‘고난’이라는 기독교 신앙의 정수를 어줍지 않은 ‘복(福)’으로 포장을 해서 전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은혜를 떠나 스스로 왕이 되고 싶어 하는 아담의 자리가 얼마나 어리석은 자리인지를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의 장중(掌中)으로 회귀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 <그런 기독교는 없습니다> 중에서..

솔로몬이 일천 번제이후 구하는 것은 우리가 흔히 기도제목이라고 일컫는 것과는 확연히 달랐습니다. 그리고, 네 앞에도, 네 뒤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으리라는 극찬을 하셨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은 이와 같습니다. 듣는 마음을 주사, 선악을 분별하게 하소서. 
가야할 때는 가고, 멈춰야할 때에는 멈출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허락하소서


2. [육잘] 아이엄마와 이야기를 했다. 우리 아이들이 우리가 원하는 모범생의 모습은 아닐 수 있다고. 특히, 첫째와의 실갱이를 수시로 하게 되는 스스로를 보게되면서 그런 것 같다. 일정부분 포기하는 것도 있고, 일정부분 깨우치는 것도 있으리라

첫째는 자신이 집중하는 한가지 외에 다른 일에는 태연스러워 보인다. 둘째는 주어진 모든 것을 놓치고 싶지 않은 악착같음이 보인다. 

부모에게 양육에 대한 모범답안을 가지고 있겠지만 정답이라고 내릴 수 없다. 왜냐하면 정답은 각자 그 안에 심기어주셨기 때문에 스스로가 그 디자인된 자신을 깨우쳐 알기 전까지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단지, 부모의 기도는 당신의 소리만을 듣는 마음와 진리 앞에 담대할 용기를 허락하소서


Posted by 제이콥림
겨자씨의 믿음2015.08.17 17:35

660. 로뎀나무 아래에서의 엘리야


로뎀 나무 아래에 앉아서 자기가 죽기를 원하여 

he sat down under it and prayed that he might die. “I have had enough, Lord,”


1.[묵상] 엘리야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00명 다 참수해버리고, 갈멜대첩의 800:1 승리를 이끕니다. 승승장구할 것 같은 엘리야는 순간 도망자로 전락하게됩니다. 이세벨의 협박을 받고 로뎀 나무에 머리를 박고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 어떻게 이렇게 일 하실 수가 있습니까? 차라리 저를 죽여주세요.’ 


하나님께서 그를 호렙산으로 부르시고 거기서 엘리야에게 대답하십니다. 엘리야야, 네가 원하는 것이 이런 것이냐? 

크고 강한 바람을 불게 하십니다. 그런데 그 안에 하나님이 안 계십니다. 


곧 이어 커다란 지진이 일어납니다. 거기에도 하나님이 안 계십니다. 

큰불이 그 앞에 있었는데 거기도 안 계십니다. 


그리고는 작고 세미한 음성이 들립니다. 하나님이 거기 계십니다.

 

— 계시록 강해 중에서


2. [육잘] 아이가 자고 일어나서 자기 이불을 스스로 갠다. 너불러진 장난감을 치웁니다. 스스로 옷을 입을 때보다 더 큰 감동이 있다 

그 행위를 칭찬을 한다. 그렇지만 그 행위를 하고 안하고는 우리가 아들들을 사랑하고 사랑하지 않는 조건 일 수는 없다.


좀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그들의 행위는 나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그 존재자체가 귀한 것이고, 그의 마음자체가 귀하다. 어떤 것을 행하던 그렇지 않던 자녀됨이 바뀌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아이들의 방향성 오직 믿음 안에서 그 방향으로 계속 가고 있는지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갈멜산 대첩의 승리를 이끈 그 엘리야 행위에 하나님은 관심이 없었다. 이세벨의 협박을 받자마자 스스로의 삶을 원망하는 자로 전락하고 만다. 한 친구의 간증을 듣는다. 금융업계에서 최고의 승전보를 올리고 있던 이가 한 순간의 몰락을 맞이한다. 새벽무릎 중 응답을 받고, 베푸는 삶을 다짐한다. 


행위의 좋고, 나쁨은 손바닥 뒤집듯 언제든 변할 수 있는 것이다. 결코 그것은 우리가 살아 있기 때문에, 주신 달란트 덕분에 해내고 있는 것 뿐이지 히브리서의 바라는 것들의 실상은 아닐 것이다. 아이들을 바라볼 때 그 자체를 사랑으로 바라보고, 이를 깨달아 알아가기를 원하는 것처럼


하늘의 계신 그 분께서도 내가 당신을 알아채기를 원하실 뿐인 것이다. 연인의 원함을 알아챌 때 그것을 해주고 싶은 것은 사랑의 기본인 것처럼, 그분의 사랑을 알아챈 사람은 그것을 하고 있을 뿐이지, 그 행위 자체에 대한 평가를 통한 상급은 아닐것이다. 


오늘 그의 사랑이 원하는 그것을 알아채기 위하여 조용히 들을 뿐이다.


신음하면서, 추구하면서

Posted by 제이콥림
겨자씨의 믿음2014.02.15 05:00
[성중이도큐티한다] 280. 화려한 욥, 초라한 욥. 단지 그의 뜻을 따라

1. [말씀] 감화감동의 설파가 있었던 욥 :
무리들은 욥의 말에 희망을 걸었었다. 그는 동기부여가로서 으뜸이었다. 욥의 가르침은 탁월하였기에 그가 말한 후에는 다시 말할 필요가 없었고, 욥의 말은 그 마음의 감화가 되어 삶이 되었다.

욥을 늦은 비를 기다리듯 사모함으로 기다렸으며, 욥의 미소에 그들의 마음이 녹았다.

2. 그들의 필요를 알았던 욥 :
욥은 앞을 못 보는 이의 눈이되고, 저는 이에게 발이 되고, 빈궁한 자의 아버지요, 억울함에 처해 있는 이의 변호사였다. 불의를 보고 가만히 두지 않았으며 숨을 거둘 마지막날에 기다리는 것은 행복뿐이요, 그 행복의 나날은 모래알 같이 많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경제적으...로 풍부해지고, 사회적으로 높아지고, 늘 새로움이 채워지고, 자식의 축복까지 임하였다.

3. 이전 삶과 극명한 대비 :
이제는 양떼를 지키는 개들보다 못하고, 궁핍과 공동체의 배척당하고, 하나님에 대하여 무관심할 정도로 판단력이 마비된 사람에게 조차 조롱과 놀림거리가 되고 있다. 얼굴에 침밷고, 내 발에 덫을 놓고, 에워싸서 위협한다. 공포가 나를 둘러싸고, 나의 영광은 바람처럼 , 행복은 구름처럼 날아갔다고 생각되어진다.

4. [일상] 화려했던 어제도, 부딪히며 사는 오늘도, 불투명해 보이는 내일도. 다 나 인것이다. 부정해도 '나'인 것이고, 긍정해도 '나'인 것이다. 이제는 만나고자하는 만남 중심으로, 쓰고자 하는 방향대로 시간을 써 간다. 아직 연결의 고리가 멀어만 보이는 그것에 투자를 한다. 펀드레이징도, 의료선교사 훈련생 지원도, 영어도.

오늘 여기서, 지금 하는 그 일이 그가 원하심을 알 뿐인데
Posted by 제이콥림